자유게시판
- 김용환
- 202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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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아주 오래 전에 윤택이라는 개그맨이 '택아' 라는 코너에서 비몽사몽 간에 날리던 멘트 '그분이 오셨어요'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분"은 사람마다 여러 가지 다른 의미로 받아 들여졌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님'이기도 했고, 시인 한용운이 그리워하던 그 '님'일 수도 있고,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과 닮은 '그분'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무당이 접신했을 때도 '그분이 오셨어요'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님이시며, 성령님이 오셨을 때도 아마 그렇게 '그분이 오셨어요'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그분이라는 말이 주는 존경심을 극대화했을 때 주님이나 성령님께 이 말 밖에 어찌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지요? 어떤 특별한 징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요? 사도행전 2:1-11의 기록에 의하면
성령의 강림은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민족들이지만 동일한
의미로 알아듯는 장면을 루카 복음사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힘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강림은 갈라진 민족과 언어를 통합하여 하나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복음의 기쁨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시는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시, 공간적 장벽을 뛰어넘는 보편적 사건이 바로 성령 강림의 역사입니다. 2,000년 전에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성령이신 '그분'은 우리에게
찾아 오십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의 사건은 동일한 민족이 나누어지고 흩어지는 것은 바로 언어의 분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교만과 탐욕이 대립과 분열의 시작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에게 이해의 힘을 주시는 분이여, 이를 통해 화해와 일치를
가능하게 해 주는 힘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벨탑의 사건과 성령강림의 사건은 대칭으로 놓여 있는 하느님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서로 이해하고 화해와 일치를 위해 아주 작은 말과 실천을 할 수만 있다면 이미 우리 안에 '그분'이 오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염리동 성당 공동체 식구들에게 언제나 '그분'이 함께 하시어 일치와 화해의 공동체가 되리라 의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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